차향(茶香)과 정원 그리고 치열한 문학정신이 있었다 - 1
전라남도 / 보성
사흘간의 남도여행. 전라남도 보성과 고흥으로 떠났다. 자주 가던 익숙한 여행지지만 갈 때마다 늘 새롭다. 게다가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5월은 더더욱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남도의 싱그러운 자연과 감칠맛 나는 음식에 몸과 마음이 한껏 즐거웠다. 보성과 고흥을 3편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거대한 녹색융단, 대한다원
보성은 국내 최대의 녹차 생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지리적으로 한반도 끝자락에 위치해 바다와 가깝고, 기온이 온화하면서 습도와 온도가 차 재배에 아주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산비탈마다 어김없이 조성된 녹차밭을 보면 마치 신화에나 나옴 직한 거인이 산꼭대기에 올라 커다란 녹색 융단을 주르륵 펼쳐 놓은 듯하다. 차 수확기가 되면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주머니들이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차밭에 빼곡히 들어가 분주하게 찻잎을 따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차 수확기인 5월에 아주머니들이 햇차를 따고 있다.
보성읍을 지나 율포해수욕장 쪽으로 가다 보면 대한다원이 나온다. 1957년 설립된 차(茶) 관광농원으로 들머리의 아름다운 삼나무길을 지나면 무려 30여만 평에 이르는 대규모 차밭이 나온다. 규모도 규모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과 푸른 차밭에서 뿜어져 나오는 싱그러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차밭 사이에 낸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둘러보고 나면 몸과 마음이 마치 녹색 샤워를 한 듯 개운해진다.
대한다원의 차밭. 푸른 차밭에서 뿜어져 나오는 싱그러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보성은 국내 녹차의 40%를 생산하고 있다.
대한다원은 영화나 드라마, CF 촬영장소로 널리 알려졌고, 2012년 미국 CNN에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관광지 50선’, 2013년에는 전 세계의 뛰어난 경치 31곳을 선정한 ‘세계의 놀라운 풍경 31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삼장리에 있는 제2 다원은 평지다원으로 대한다원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한적한 편이다. 대한다원이 산비탈에 능선처럼 차밭이 펼쳐져 있는데 비해 2다원은 너른 평지에 조성되어 있어 마치 광활한 녹차의 바다 같다. 차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도 좋지만 푸르고 너른 차밭은 그저 바라만 봐도 피로가 가시고 기분이 좋아진다.
보성군에서는 매년 5월 ‘보성다향대축제’라는 이름의 축제를 열고 있다. 차의 풍작을 기원하는 다신제와 찻잎 따기, 차 만들기, 차 아가씨 선발 등의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대한다원의 삼나무길은 삼림욕을 즐기기 좋다.
조선시대 한옥의 참모습, 강골마을
득량면 강골마을. 보성을 제법 많이 드나들었지만, 강골마을은 처음이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하는 의문과 역시나 조금 안다고 다 아는 척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골마을의 연못. 담장과 대숲에 가려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의도된 조경이 아닐까.
밖에서 보면 마을 앞에 연못이 있고 그 뒤로 돌담과 기와집이 있는 것 말고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주변이 대숲으로 둘러싸여 가까이 가도 마찬가지다. 드러나기보다는 숨김을 위해 자연스럽게 의도한 배치와 조경 같다.
강골마을은 원래 어촌마을이었는데 농촌마을로 탈바꿈했다. 1937년 득량만 방조제를 쌓는 바람에 어촌이 농촌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마을 앞 철로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바다가 농경지로 변하며 쌀 생산이 대폭 늘었으니 지명 그대로 득량(得粮, 양식을 얻음)을 한 것이다.
사실 득량이란 지명은 임진왜란 때 비봉리 선소마을 앞섬(득량도)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대치하던 중 아군의 식량이 떨어져 비봉리 선소에서 식량을 조달해 왜군을 퇴치했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강골마을은 원래 어촌이었지만 득량만 방조제를 쌓는 바람에 농촌이 됐다. 마을 들목의 밀밭.
강골마을은 광주 이씨의 집성촌으로 조선시대 한옥의 참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로 꼽는데, 39개 가옥 가운데 3개의 가옥(이금재, 이용욱, 이식래 가옥)과 1개의 정자(열화정)가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가운데 있으면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 이용욱 가옥은 헌종 1년(1835년)에 이진만이 지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남도식 평면구조에 마을에서 유일하게 솟을대문을 갖추고 있다. 이 집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 행랑채, 중간문채, 사당과 연못 등을 모두 갖추고 있어 이 지방 사대부들의 집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민속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이용욱 가옥은 전형적인 남도식 평면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용욱 가옥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사당이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에는 부모를 여의면 묘 옆에서 3년을 지키는 것을 자손의 도리로 여겼다. 하지만 묘 옆에 초막 하나 지어놓고 3년간이나 잠자리,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생사람도 잡을 일이며 도와주는 가족도 죽을 맛인 것은 뻔한 사실. 그런데 이용욱 집안은 집 안에 사당을 지어놓고 사당의 작은방에서 기거하며 삼년상을 치른 뒤 안채로 돌아가는 슬기를 발휘했다.
또 하나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우물 곁 담장에 뚫은 작은 구멍이다. 지체 높은 집안이라 마을 사람들이 함부로 집에 들어가 주인을 만나기 어려우므로 뚫린 담장을 통해 하인에게 청을 하면 하인이 주인에게 대신 전달했다는 것이다.
우물가 담장에 뚫은 작은 구멍은 지체 높은 양반과 마을 주민들의 소통 창구였다.
마을 뒤편 높직한 곳에는 열화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진만이 후진 양성을 위해 지은 것으로 주변 자연과 잘 조화된 아름다운 정자이다. 1845년에 쓴 열화정기에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친척과 정이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다”라는 글을 따서 ‘열화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적고 있다. 득량 바다와 오봉산의 조망을 위해 연못주변에 담을 쌓지 않고 누마루의 기둥을 높게 올렸다. 지역 선비들의 집합소이자 이관희, 이양래, 이웅래 등 의병열사를 배출한 곳으로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 162호로 지정되었다.
열화정. 득량 바다와 오봉산 조망을 위해 연못주변에 담을 쌓지 않고 누마루의 기둥을 높게 올렸다.
강골마을은 2004년부터 ‘정보화마을’을 추진해 나이 많은 주민도 젊은이 못지않은 컴퓨터 실력을 갖추었고, 소리의 고장 답게 옛 가락 음악회도 주기적으로 열고 있다.
80년 동안 공들여 가꾼 초암정원
전라남도에서는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최 이후 ‘정원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순천만정원을 국가정원으로 지정하고, 이와 별도로 민간정원도 지정했다. 지금까지 4곳을 지정했는데 고흥의 쑥섬이 제1호, 담양 죽화경이 제2호, 보성 초암정원이 제3호, 고흥 금세기정원이 제4호이다.
초암정원의 잔디길. 돌아보면 양옆에 늘어선 나무들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듯 보인다.
강골마을 가까이 민간정원 제3호로 지정된 초암정원이 있다. 초암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덕에 늘 푸르름을 유지한다고 ‘풀음마을’이라고도 불렀다. 드넓은 득량만과 예당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광산김씨 문숙공파 23대손 김선봉 선생이 장흥 망암에서 보성으로 옮겨 살았던 명당으로, 지금은 후손인 김재기 씨가 정원을 가꾸고 있다.
김재기 씨는 20대 때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를 그리며 나무를 심었고, 새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었으며, 두 살 때 세상을 떠난 누이동생을 잊지 않으려고 정원을 가꾸었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편백숲길.
정원은 200여 년 된 종가 고택에서 시작해 긴 잔디길로 이어진다. 잔디길 끝에서 돌아보면 길 양옆에 늘어선 나무들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듯 보인다. 이어 언덕을 오르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한 대밭과 편백숲길이 나와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과 바람을 선사한다.
득량만과 예당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초암정원에는 200여 종의 나무와 꽃이 심겨 있다. 대부분 상록수라 사시사철 푸르고 아름답지만 그중 겨울이 으뜸이라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난대림꽃들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혹시나 운이 좋아 김재기 씨와 동행하게 된다면 마치 판소리 사설 한자락을 풀어놓는 듯한 구수한 입담을 곁들인 해설을 들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