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계곡이 숨겨놓은 보물, 베틀바위산성길
동해 여행 / 둘째 날
이번 동해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은 베틀바위산성길이다. 처음 가보는 곳이지만 그리 크게 기대하지 않고 갔다가 베틀바위를 마주하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언제부턴가 웬만한 풍경에는 감동하질 않는 나를 발견하고 직업병인가 했는데 베틀바위는 달랐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베틀바위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게 떠오른다.
무릉계곡 입구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기온을 보니 영하 7도에 강풍까지 불어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였다. 너무 추운 거 아닌가, 이 무서운 코로나 시국에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인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럴 땐 늘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는 게 낫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망설임을 접는다.
베틀바위산성길은 무릉계곡 매표소를 지나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바로 시작한다. 베틀바위 산성길은 너무나 험준해 출입을 통제하다 올해 8월, 무려 43년 만에 개방한 길이다. 동해시의 요청으로 동부지방 산림청에서 탐방로를 정비하고 안전시설을 갖추어 개방했다.
베틀바위산성길은 아직 박달계곡 구간은 개통이 안 됐고, 내년 1월 중순쯤 전 구간 개통 예정이다. 현재는 두타산성으로 이어진 ‘비상대피로’로 내려와야 한다. 베틀바위 전망대까지는 약 1.5km로 편도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조금 있는 편이고 주로 돌길이다. 산행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베틀바위 전망대까지만 다녀와도 되겠다. 등산로가 잘 닦였고 안내 표시도 잘 돼 있다.
베틀바위는 해발 550m에 위치했는데 바위가 베틀처럼 생겼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산악인들은 베틀릿지라고 불렀다. 설악산 공룡능선 같기도 하고 금강산 봉우리 같기도 하다. 중국의 장가계에 비유하기도 한다. 옛날 하늘나라 선녀가 하늘의 질서를 어겨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가 비단 세 필을 짜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깃들어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겨울에는 베틀바위에 응달이 지는 점이다. 바위에 햇살까지 비춰준다면 더욱 환상적일 것 같았다. 관리소 직원에 의하면 오후 4시쯤 해가 삽시에 비추고 바로 달아난다고 한다. 삽시간의 황홀인 셈이다. 봄이나 가을이 가장 보기 좋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미륵바위가 나온다. 불쑥 솟아오른 이 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미륵불, 선비, 부엉이의 모습을 닮았다.
다시 두타산성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산성12폭포와 거북바위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따라가 본다. 꽝꽝 얼어붙은 산성12폭포가 보이고 곧이어 아주 독특한 생김새의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거북바위. 자연의 조화라지만 어떻게 저런 형상의 바위가 생겼는지 너무나 신기하다. 거북이 한 마리가 바위에 올라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는 듯하다.
두타산성은 신라 파사왕 23년, 두타산의 험준한 지세를 이용해 산성을 쌓았다. 임진왜란 때 많은 사람이 난을 피해 산성에 모였고, 의병장 최원흘을 중심으로 젊은 의병들이 이 성을 공격하는 왜적들을 전멸시킨 싸움터이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 성터는 허물어졌고 성터의 돌무더기 흔적만 조금 남아있다. 두타산성 오른쪽으로는 커다란 바위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백곰바위다. 백곰이 엉덩이를 들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7, 8년 전 이곳에 올라 백곰바위가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며 찾다 결국 못 찾았는데, 지금 보니 예전 두리번거리던 그 자리 바로 옆에 백곰바위가 있었다.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두타산성에서 30여 분쯤 걸려 무릉계곡 옥류동 근처로 내려왔다. 표지판을 보니 쌍폭포는 0.9km, 용추폭포는 1km 떨어져 있었다. 내년 봄이나 가을, 베틀바위산성길 전 구간이 개통됐을 때 꼭 다시 한번 일주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평탄한 무릉계곡길을 걸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