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남파고택>
나주 남파고택은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상류계층 가옥이다. 조선시대 후기(1884년)에 남파 박재규가 초당을 짓고 살림을 시작한 이후 재산이 늘자 1910년대 안채와 아래채를, 1930년대 문간채와 바깥사랑채를 지었다. 후손이 지금까지 대를 이어 거주해 오고 있으며 안채, 바깥사랑채, 아래채 등 본디 모습을 거의 그대로 지니고 있다.
전라남도에 있는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크기를 가진 개인주택이며, 장흥 관아 건물 형태를 모방해 지었다고 한다. 남파고택을 통해 근대 한옥 변천 과정과 남도 지방 상류주택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어 중요민속자료 제263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집안에 보존하고 있는 각종 민구류, 공예품 등이 시대별로 잘 갖추어져 있어 호남 나주지방의 생활문화 연구에 큰 자료가 된다. 4,00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옛 문서들을 통해 19세기 말부터 이루어진 재산 형성과, 20세기 중반에 일어난 재산 손실 과정을 낱낱이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상과 부채, 1910년대의 종이, 안장과 말치레(말을 꾸미는 도구) 등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자료는 우리나라 근대 경제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산이다.
남파고택은 일제강점기 11·3 전국 항일 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나주역 사건’의 주인공인 박준채 선생이 살면서 광주로 통학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고등공민학교를 운영하는 등 나주 사회운동과 근대교육의 산실 역할도 했다.
현재는 전라남도 의원과 나주문화원장을 지냈던 후손 박경중 씨와, 나주시의회 의원을 지낸 부인 강정숙 씨가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