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 고흥
아름답지만 슬픔이 담긴 섬, 소록도
고흥에는 소록도가 있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슬픈 역사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섬. 중학교 때인가, 국어 교과서에서 충격적으로 만났던 그 시.
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에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삼거리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자원봉사자들이 중앙공원에 세운 구라탑(救癩塔). 한센병(나병)에서 구해낸다는 의지를 담았다.
소록도는 고흥반도 서남쪽 끝에 있는 녹동항 앞바다에서 약 6백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 작은 섬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6년 한센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진료 ·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이 섬에 국립소록도병원을 지었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건너갔지만 2009년 소록대교가 정식 개통되면서 소록도와 육지 간을 육로로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건넜지만 소록대교가 생겨 쉽게 건널 수 있다.
‘작은 사슴 섬(小鹿島)’이라는 이름 그대로 작고 예쁜 섬이지만 한센병(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눈물과 피땀이 배어 있는 슬픔의 섬이기도 하다. 소록도 병원이 생기면서 일본인들은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동원하여 땅을 파고, 섬 일주도로를 내고,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굽고,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었다. 섬의 모습은 천국처럼 변해 갔지만, 환자들에겐 지옥이었다. 소록도 들머리에 있는 검시실과 감금실을 둘러보면 당시 얼마나 참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망 환자는 우선 이 검시실에서 검시절차를 마친 뒤에야 화장을 할 수 있었다.
부당한 처우와 박해에 항거한 환자들은 이 감금실에 갇혔고, 나오더라도 정관절제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를 새긴 바위. 그 뒤로 수호 원장 기념비가 보인다.
당시 이곳의 병원 원장이었던 일본인 ‘수호’는 1942년 자신의 동상 앞에서 환자들의 사열을 받다 한 환자의 칼에 맞아 죽었다. 손가락이 모두 떨어져 없는 환자가 쇳조각을 갈아 칼을 만들어 팔뚝에 붕대로 동여맨 채 수호를 찔렀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소설화한 것이다.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섬, 연홍도
소록도에서 무거워진 마음을 달래고자 연홍도로 향한다. 연홍도는 거금도와 금당도 사이에 있다. 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연(鳶)과 같다 하여 연홍도(鳶洪島)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에 거금도와 맥이 이어져 있다 하여 연 ‘연(鳶)’자를 이을 ‘연(連)’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섬의 지형이 말의 형상과 같다 하여 마도(馬島)라 불렀다고도 한다.
연홍도 선착장에 내리면 반기는 조형물
섬주민들의 가족사가 담긴 연홍 사진박물관
고흥 출신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의 모습을 담은 벽화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다채로운 벽화에 눈길이 가 발걸음이 더디어질 수밖에 없다.
연홍도는 신양선착장에서 배로 5분 거리다. 섬이 작아 북서쪽 ‘좀바끝’에서 남쪽 ‘아르끝’까지 둘레길을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 남짓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
연홍도는 흔히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불린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큰 소라를 비롯한 조형물이다. 연홍도 골목길에 들어서면 다채로운 벽화와 아기자기한 조형물에 한눈팔려 발걸음이 저절로 더디어질 수밖에 없다. 연홍미술관까지 가는 해안길 또한 바다를 배경으로 지속해서 조형물들이 이어진다. 조형물 또한 결코 허투루 만든 게 없다.
연홍미술관 가는 해안길에도 조형물이 이어진다.
프랑스의 설치미술가 실뱅 페리에가 작업한 은빛물고기 조형물
폐교를 개조해 만든 연홍미술관
프랑스에서 귀국한 미술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연홍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홍미술관은 폐교를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다. 서양화가 131명이 기증한 작품을 순환 전시하고, 초대전도 연다. 미술관이면서 외부 손님들을 위해 숙소와 식당도 겸하고 있다. 작은 섬이지만 다 둘러보고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자석 같은 끌림을 가지고 있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섬이다.
기승전결을 갖춘 섬, 쑥섬
이번 3박 4일 남도 여행길에서 가장 즐거운 만남은 쑥섬이었다. 나로도 연안여객터미널에서 12명 정원의 작은 배를 타면 불과 5분이면 닿는 거리에 쑥섬이 있다. 쑥이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행정명칭은 애도(艾: 쑥 애, 島: 섬 도)이다. 전라남도 민간정원 1호인 섬이기도 하다.
쑥섬 가는 배. 예쁘게 꾸며 놓은 12명 정원의 작은 배.
연홍도와는 달리 선착장에 내리면 첫인상이 그다지 볼거리 없는 밋밋한 섬 같다. 하지만 갈매기카페를 지나 헐떡길을 올라 숲속 탕방로에 들어서는 순간 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희귀한 나무들이 기다렸다는 듯 줄줄이 나타난다. 말을 닮은 나무, 사람의 얼굴을 닮은 나무, 코알라가 매달려 있는 듯한 나무, 여성의 가슴을 닮은 나무 등. 그러한 나무마다 안내판을 세워 이해를 도와준다. 안내판을 읽어보면 스토리텔링이 예사 솜씨가 아니다.
섬 탐방길이 시작되는 갈매기카페
여성의 가슴을 닮은 나무
쑥섬지기 김상현 씨. 약사인 아내와 함께 17년간을 주말마다 섬에 들러 섬을 가꾸었다.
이 섬을 가꾼 이는 고흥에 사는 한 부부다. 고흥에서 중학교 국어교사를 하는 쑥섬지기 김상현 씨와 고흥에서 약국을 하는 고채훈 씨가 그이다. 17년간을 주말마다 섬에 들러 이곳저곳을 가꾸고 섬 정상부에 정원을 꾸몄다.
'환희의 언덕'에 서면 '쑥섬 큰바위얼굴'과 소거문도, 거문도, 손죽도, 초도가 보인다.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물 한 모금 마실 만한 자리인 ‘환희의 언덕’ 에 서면 ‘쑥섬 큰바위얼굴’과 소거문도, 거문도와 손죽도, 초도가 보인다. 쑥섬 탐방로에는 500여 종의 나무와 30여 종의 야생화가 피고 지고 한다. 이 길을 만든 사람은 쑥섬지기 김상현 씨의 아버지로 전남에서 내로라하는 석공이었다고 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별정원에 활짝 핀 꽃양귀비
별정원에는 400여 종류의 꽃들이 4계절을 쉼 없이 피고 진다.
원래는 칡넝쿨로 뒤덮였던 곳인데 쑥섬지기 부부가 일일이 다 걷어내고 꽃밭을 만들었다.
성화등대. 여기서 더 이어지는 길은 없다.
품 너른 후박나무가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준다.
우물이 섬 끄트머리에 있어 우끄터리 쌍우물이라고 부른다. 또 하나의 우물은 이 우물 아래에 있다.
마침내 민간정원 1호인 ‘별정원’이 나타난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섬 정상에 이런 천상의 화원이 있다니! 400여 가지 꽃들이 이 자리에서 1년 4계절 피고 진다. 원래는 칡넝쿨로 뒤덮인 곳이었는데 부부가 일일이 다 걷어내고 꽃을 심어 꽃밭을 만들었다. 붉은 양귀비꽃이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모습이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
여기서 다시 마을로 내려가도 되고 신선대와 성화등대까지 이어진 길을 가도 좋다. 등대 아래로 내려가면 길은 끊어진다. 등대 갈림길에서 다시 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커다란 후박나무가 나오고, 조금 더 내려가면 ‘우끄터리 쌍우물’이 기다리고 있다. 우물이 섬의 북쪽 끝에 있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쑥섬은 처음엔 평범한 듯 보이나 탐방로에서 슬쩍 한 번 반전을 준 뒤, 이어 정원에서 절정을 안겨준다. 기승전결을 제대로 갖춘 섬이다.
선착장 정자 옆에 돌담길이 있다.
돌담 안에 핀 꽃이 화사하다.
거금대교 아래에서 만난 해넘이
(고흥의 먹을거리)
대진횟집
고흥군 도양읍 비봉로 257
061-842-0003
남일식당
고흥군 도양읍 우주항공로 3
061-842-3861
순천횟집
고흥군 봉래면 나로도항길 103-18
061-833-6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