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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의 아들 김주열 열사를 아는가?

숲어진새 2024. 4. 16. 18:24

김주열 열사 추모공원·김주열기념관·김주열 생가

 

남원 하면 춘향과 이도령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가 남원 출신이란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3·15 부정선거 시위를 하다 마산에서 죽음을 맞았기에, 마산상고 입학예정자였기에 김주열이 마산 사람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

 

김주열 추모공원에는 동상과 기념관, 추모각, 묘소가 있다.

 

김주열은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총명해 학업 성적도 뛰어났지만, 중학생 무렵 가계가 기울며 마산상고 장학생 입학을 위해 시험을 치렀다.

 

김주열 어머니 권찬주 묘소에서 바라본 기념관

 

1960315일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두고 형과 함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마산 1차 의거에 참가한다. 이모할머니 집에서 잠시 쉬다 저녁에 다시 시위대에 합류한 김주열은 실종되고 만다. 이승만 정권과 경찰은 시위 참가자들을 용공분자. 난동분자, 빨갱이로 몰았다.

 

기념관엔 김주열 열사의 사진과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김주열 어머니 권찬주 여사는 아들을 찾기 위해 남원에서 마산으로 건너와 25일 동안 마산 전역을 돌아다니며 아들을 애타게 찾았고, 그로 인해 마산 시민들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411일 김주열의 시신이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상태로 마산 중앙부두에 떠올랐다. 경찰 간부 박종표가 김주열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김주열의 시신에 돌덩이를 매달아 마산세관 앞 바다에 수장한 것이다.

 

누나, 친구와 함께 광한루로 나들이 나와 찍은 사진(앉은 이가 김주열)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마산은 물론 전 국민의 분노가 불길처럼 빠르고 강하게 타올랐고, 급기야 4·19민주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결국 426일 독재자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내고 미국으로 망명했고, 독재자의 하수인 이기붕은 아들의 총탄으로 일가족이 자결했다.

 

사후에 받은 마산상고 명예졸업장.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이 나라 역사에서 4·19는 민중의 힘으로 일구어낸 최초의 혁명으로 헌법 전문에도 기록될 만큼 큰 획을 그은 대사건이고, 그 불씨의 주역이 바로 김주열 열사인 것이다.

 

김주열에 대한 보도가 실린 당시의 신문

 

 김주열 추모공원에는 기념관과 추모각, 김주열 묘소가 있다. 당국의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던 어머니 권찬주(국가유공자 등록) 묘소도 가까운 산에 모셨다. 김주열사의 묘는 3개로 고향인 이곳에 진묘가 있고 마산 4·19 민주묘역과 서울 수유리 4·19 민주묘역에 가묘가 있다. 추모공원에서 차로 2,3분 거리엔 김주열 생가가 잘 보존돼 있다.

 

봉분 잔디 단장을 위해 검은 천으로 덮어놓았다.

 

김주열 생가가 잘 보존돼 있다.

 

주말임에도 김주열 추모공원을 찾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고 쓸쓸한 꽃샘바람만 불었다. 남원시는 춘향과 이도령 말고도, 자랑스러운 남원의 아들 민주열사 김주열의 의로운 죽음도 널리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김주열 추모공원 : 남원시 금지면 금지순환길 917-13

*김주열 생가 : 남원시 금지면 독우물안길 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