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새롭게 보였던 영주의 모습들

임인학 2023. 6. 7. 17:21

여기 어때? 우리 지금 영주라는 영주 경험하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영주는 30여 년 전부터 드나들던 고장이다. 특히 가을 부석사에 매료돼 매년 10월이 되면 마치 고향을 찾아가듯 홀로 아니면 가족과 함께 찾곤 했다.

 

어느 해인가는 영주에 거주하는 후배의 요청으로 영주 곳곳을 돌며 영주 지역 예술인들 작업장을 방문해 무상으로 사진을 찍어 준 일도 있으니, 영주와 나와의 인연은 꽤 깊은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프로그램을 신청한 이유는 영주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전통사상과 효를 바탕으로 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효마루체험센터.
문화유산활용진흥회 김영탁 대표의 오리엔테이션.
나만의 도자기 만들기 체험.

 

첫날 집결지이자 전통사상과 효를 바탕으로 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효마루체험센터에서 나만의 도자기 만들기체험을 했다. 서툰 솜씨지만 흙을 빚어 문양까지 넣어 가며 접시를 만들었다. 가마에 구워야 하니 한참 뒤에나 받을 수 있겠지만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하다.

 

부석사 무량수전과 석등.

 

부석사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소백산맥.

 

선묘낭자가 돌로 변신해 공중에 떠서 악당들을 위협해 물리쳤다는 부석.

 

선묘각의 선묘낭자.

 

무량수전 앞마당에 모여 만월등을 밝히고 소원을 비는 시간.

 

영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우리나라 화엄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부석사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다. 날씨가 흐려 부석사의 장엄한 해넘이를 볼 수는 없었으나 해 질 무렵 고즈넉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범종 타종 소리 그리고 무량수전에서 들은 총무스님(등화스님)의 강연도 인상 깊었다. 특히나 캄캄한 밤 무량수전 앞마당에 모여 만월등을 밝히고 소원을 비는 시간은 부석사 야간기행 프로그램의 화룡점정이라 할만했다.

부석사 창건설화인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이야기를 그린 샌드아트감상, 뮤지컬 공연, 승무 감상과 우리 춤 배우기도 이색적이었다.

 

꽃계마을 입구에 수령 500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꽃계마을(화계리)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는 수령 500년이 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는데 그 너른 그늘이 마을 사람의 더위까지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꽃계마을에서는 한방 약초, 친환경 농산물 수확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인동장씨 종택

 

이 마을은 인동 장씨와 의성 김씨 집성촌으로 인동 장씨 종택이 있는 선비마을이기도 하다. 조선 세조 때 적개공신 장말손의 후손 장언상(15291609)이 이곳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살면서 후손이 번창하여 장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12대 종손인 장덕필 씨 부부는 지금까지도 거주하며 선조들의 유물과 유적, 사당 등을 관리하고 있다. 종택에는 고려시대 홍패를 비롯해 보물 5(525)과 고려·조선 초의 고문서(도지정문화재 227) 700~800년 이상 된 귀중한 유물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

 

추원재. 한석봉 글씨다.
인동장씨 12 대 종손인 장덕필 씨.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 땅속에 묻어두고 후퇴해 27년 만에 찾았다는 '패도'

 

한국전쟁 때는 종택이 인민군 본부로 사용됐는데 인민군이 갑자기 후퇴하게 되자 종가의 유물인 패도를 땅속에 묻어두었다. 그 이후 집안의 귀한 보물을 잃어버려 종손의 부친께서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부친의 꿈에 장말손 어른이 꿈에 나타나 패도가 있는 위치를 알려줘 27년 만에 패도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종택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인 무섬마을.

 

해우당 고택.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마을 강가에 놓인 작고 소박한 외나무다리.

 

하늘에서 본 무섬다리. 마을 앞으로 3면을 휘감아 도는 내성천을 따라 은백색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영주 시내에서 승용차로 30분쯤 가면 물 위에 뜬 연꽃 모양을 한 무섬마을, 수도리(水島里)라고 부르는 마을이 나온다. 반남 박씨, 선성 김씨의 집성촌인 이 마을은 영주에서도 알아주는 양반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는 3면을 휘감아 도는 내성천을 따라 은백색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야트막한 제방 안쪽으로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해우당이나 만죽재 같은 고택도 볼거리지만 이 마을의 강가에 놓인 작고 소박한 외나무다리에 더 마음이 간다. 지금은 마을 입구 도로와 이어진 곳에 시멘트 다리가 놓였지만, 전에는 이 작은 나무다리가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예전엔 술 한잔 걸친 마을 남정네들이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심이 그리 깊지 않아 위협적이진 않다. 무섬마을엔 문화재로 지정된 9채의 가옥이 있는데 대부분 100~200년의 역사가 있는 고택이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직접 바위에 새겼다는 백운동(白雲洞)과 경(敬).

 

유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던 강학당. 지금도 이곳에서 훈장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조선 중종 37(1524)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말 유학자이자 최초의 성리학자인 회헌 안향 선생을 기리고자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 백운동서원을 건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조정에 건의해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게 되었다. 사액서원이란 임금으로부터 특별히 서원의 명칭을 부여한 현판과 그에 따른 서적·노비 등을 하사받고 면역의 특전까지 부여받은 국가공인 서원을 말한다.

 

강학당 훈장 선생님.

 

소수서원에는 300년 이상된 적송이 서원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소수서원은 아름드리 소나무로도 유명한데 서원 근처에 군집해 학자수림(學者樹林)이라고도 부른다. 소수서원은 보물로 지정된 강학당을 비롯해 장서각, 직방재와 일신재, 전사청, 영정각 등의 건물로 서원을 이루고 있다.

 

남한 유일의 고구려계 벽화고분인 영주순흥벽화고분 모형관.

 

모형관 안에 벽화고분을 재현했다.

 

국가 사적 제313호인 '영주순흥벽화고분'는 남한 유일의 고구려계 벽화고분이다. 순흥면 읍내리 비봉산 정상에서 서남방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고분은 내부에 역사상(力士像)을 비롯 연꽃, 구름무늬 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횡혈식석실분으로 통일신라기인 법흥왕 26(539)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영주순흥벽화고분의 연꽃 그림

 

영주순흥벽화고분의 역사상 ( 力士像 )

 

순흥 벽화고분에서 3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어숙묘 역시 벽화고분으로 석실로 출입하는 돌문에서 '을묘년어숙지술간(乙卯年於宿知述干)'이라는 명문이 확인됐다. 정밀지표조사 결과 순흥 벽화고분과 어숙묘가 위치한 비봉산에만 수백 기의 삼국시대 고분군이 분포하며, 인근까지 포함하면 순흥면 근처에만 70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분을 덮었던 뚜껑돌.

 

영주순흥벽화고분은 삼국시대 회화와 종교관, 내세관 등을 이해하고 삼국의 문화교류를 파악하는데 실마리가 되는 매우 중요한 문화재이다.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여우생태관찰원).

 

관찰원 운동장 그늘에서 여우가 쉬고 있다.

 

굴속에서 새끼를 낳는 여우.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여우생태관찰원)은 이번 영주 경험하기 프로그램 중 가장 기대와 흥미를 느꼈던 곳이다. 한때 여우는 한반도 전역에 분포했지만 1960년대 '쥐잡기 운동'과 서식지 감소로 개체 수가 급감하기 시작해 절멸 위기에 처했다. 2004년 강원도 양구에서 토종여우의 사체가 발견된 게 마지막 발견 기록이다. 이에 정부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증식·복원 종합계획사업의 일환으로 토종여우의 인공증식과 자연생태계 복원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복원 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80여 마리가 방사됐고, 현재 80여 마리가 야생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우는 멸종위기 야생생물1급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야행성인 여우지만 운 좋게 낮에 그늘에서 쉬고 있는 여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산양과 함께 여우도 종 복원사업에 성공해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랐다.

 

관사골은 1940년 일제강점기 영주에 중앙선 철도가 생기며 철도관사가 이곳에 지어지면서 관사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오래된 가옥들도 남아있다.

 

관사골 골목 담장에 그린 벽화 .

 

역무원 유니폼과 모자.

 

한때 영주역 근처가 번성했다는 것을 표현한 벽화.
관사골작업실협동조합에서 수공예 체험을 할 수 있다.

 

관사골은 1940년 일제강점기 영주에 중앙선 철도가 생기며 철도관사가 이곳에 지어지면서 관사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옛 관사의 모습이 남아있고 좁은 골목에 재미있는 벽화, 그리고 옛날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관사골에서 가장 높은 지대엔 작은 공원과 정자(부용대)가 있는데 여기를 오르는 계단에서 내려다보면 관사골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주시는 앞으로 관사골을 재정비해 역사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할 계획이다. 관사골 주민이자 공예가들이 만든 관사골작업실협동조합에서 한 수공예 체험도 흥미로웠다.

 

국내 최초의 인삼 전문 박물관.

 

풍기읍 죽령로에 자리 잡은 인삼박물관은 시간을 이어온 생명의 숨결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인삼 전문 박물관이다. 우리나라 인삼의 역사와 신비한 효능을 소개하고, 인삼과 관련된 유물을 통해 선조들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다.

 

풍기군수 주세붕은 산삼공납으로 백성들이 고초를 겪자 산삼 종자를 채취해 재배해 우리나라 인삼재배의 시초가 되었다 .

 

1년생 산삼을 모형으로 표현했다.

 

풍기인삼은 예부터 품질 좋기로 유명한데 자연환경이 인삼이 자라기에 적합한 것도 있지만 풍기군수 주세붕의 역할이 컸다. 주세붕은 산삼공납으로 백성들이 고초를 겪자 금계동 일대에 산삼 종자를 채취해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인삼재배의 시초가 되었다.

 

다음에는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도전해 보고 싶다 .

 

영주에 대해 꽤 안다고 내심 자부했지만 67일간의 영주 영험하기 프로그램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영주의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도전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