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여름철 강진

숲어진새 2018. 6. 13. 15:17


강진은 거의 해마다 가다시피 하는 여행지이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강진엔 당연하다는 듯 늘 봄철에 갔다. 백련사 동백이 워낙 아름다운 까닭에 동백꽃 피는 시기에 맞춰 간 것이다. 동백꽃 만개시기에 가면 강진여행에 성공한 것이고, 이르거나 늦으면 실패한 것으로 간주했다. 올해는 초여름인 6월에 강진을 찾았다.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오랜 친구에게서 전혀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느낌이라고 할까. 녹음 짙은 여름철 강진의 색다른 모습과 매력에 푹 빠졌다. 강진의 재발견이다.

 

차밭 옆에 살짝 숨은 별서정원


울창한 숲에 숨은 듯한 백운동 정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성전면의 백운동 정원. 월출산 옥판봉이 바라보이는 드넓은 강진다원 차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정원이 나온다. 한눈에 봐도 숨겨져 있는 정원이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아주 꼭꼭 깊숙이 숨은 정원은 아니고, 세상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별서정원이다. 정원 옆의 계곡은 동백나무와 비자나무가 울창해 빛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이고 계곡 아래를 흐르는 물에는 잉어가 놀고 있다


 계곡에서 잉어가 놀고 있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 이란 뜻이다.





                       정선대에서 본 백운동 정원


백운동 정원은 조선 중기 처사 이담로(聃老, 1627~1701)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성한 원림이다. 산수가 수려한 곳에 터를 정해 연못을 이용해 수공간을 조성하는 등 자연과 인공을 적절히 조합했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약사암과 백운암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건물은 다산 정약용이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백운동 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겨 이를 근거로 정원을 재현하게 됐다. 백운동 계곡은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 등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힌다.



                   강진다원. 예부터 월출산 주변의 여러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가 재배되었다고 한다. 



백운동 정원을 나오면 눈이 시리도록 푸른 차밭이 펼쳐진다. 월출산은 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산세가 뛰어난데 예부터 산 주변의 여러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가 재배되었다. 다산 정약용은 월출산에서 나오는 차가 천하에서 두 번째로 좋은 차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강진 다원은 취미로 차를 즐기는 이들뿐 아니라 일반 나들이객들에게도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방문객들은 그윽한 차 향기에 취하며 찻잎을 따보는 이색체험도 할 수 있다.

    


               수인관의 연탄불고기백반 한상 차림.  

 

육군 총 지휘부 전라병영성과 네덜란드에서 온 하멜


               냇가에 돌을 무지개형으로 쌓은 홍교. 다리 가운데 용머리 조각이 보인다.


병영성 가는 길인 성동리 냇가엔 돌을 무지개형으로 쌓은 아름다운 다리 홍교가 있다. 직사각형 화강석 74개를 무지개(홍예)형으로 짜 맞추고 잡석을 채워 보강 후 점토로 다리 위를 다졌다. 18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승록대부가 된 유한계라는 사람의 금의환향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 전한다. 홍교 상단 중앙에는 용머리 조각이 돌출되어 있는데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머리를 치켜들고 있어 해학적이다



               전라병영성은 산성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평지에 쌓은 성이다.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은 조선 태종 17(1417)에 설치되어 고종 32(1895) 갑오경장까지 조선조 500여 년간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3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 지휘부이다. 병영성 성곽의 총 길이는 1,060m이며, 높이는 3.5m, 면적은 3만 평쯤 되는데, 현재 사적 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당시 전라병영성에는 군병 9,359, 군관·나졸 600여 명이 넘었고 각 지역 휘하에는 병사 규모가 5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산성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평지에 쌓은 성이다.



               병영성 앞에 함정 유구와 해자가 보인다.



최근 병영성 일대에는 다수의 함정 유구와 해자가 발굴됐다. 함정 유구는 지름 3.5~4.9m에 이르는 원형으로 위에서 아래로 가면서 좁아지며 깊이는 최대 2.5m이고 바닥에는 촘촘하게 꽂아놓은 죽창의 흔적이 발견됐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해자는 성벽 바깥쪽으로부터 약 11~17m 거리를 두고 만들어졌으며, 해자 내부에서는 나막신, 목익(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나무 말뚝) 등의 목제유물과 조선시대의 자기, 도기, 기와 조각 등이 출토됐다.


성곽을 한 바퀴 돌아 하멜기념관으로 간다.


병영성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을 맞아 병화로 소실되었고, 이어 1895년 갑오경장의 신제도에 의해 폐영(廢營)되고 말았다. 병영성 내의 당시 건물이나 유적은 소실되고 없으나 성곽은 뚜렷이 남아 있어, 그 역사적 의의를 고려하여 복원할 계획이다. 특히 병영성은 서양에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소개했던 하멜이 1656년 강진 병영으로 유배되어 7년 동안 살면서 노역했던 곳이기도 하다.

<하멜 보고서>를 써 서양에 우리나라를 처음 소개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하멜이다. 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원인 헨드릭 하멜 일행 36명이 제주도를 표류했다. 이듬해 서울로 압송되었고, 1656년에 전라병영성에 와 7년 동안 살며 노역했다. 그는 네덜란드의 이국적인 문화와 흔적을 이곳에 많이 남기고 1666년 고국으로 돌아갔다



                      하멜은 강진에서 7년을 머물며 네덜란드의 이국적인 문화를 많이 남겼다. 


병영성 가까이 있는 하멜기념관은 이런 하멜의 생애를 기리고, 강진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의 문화적 교류를 위해 개관했다. 타원형의 목조건축으로 지어진 왼쪽의 전시관은 하멜이 표착한 남도의 섬을 상징하며, 오른쪽 각진 형태의 건물은 망망대해에 표류한 조난선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상징한다. 전시실은 <하멜보고서>를 비롯하여 하멜의 생애, 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사회·문화·역사적 상황 그리고 강진군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의 자매결연 등 각 주제별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한 골목'의 옛 담장. 하멜이 네덜란드식 빗살무늬 방식으로 돌담을 쌓았다고 한다.



수령 500년의 삼인리 비자나무.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매년 음력 1월 15일 제사를 지낸다.


전라병영성 일대에는 한골목이라고 불리는 옛 담장이 있다. 이 마을의 담장은 특이하게 빗살무늬 방식으로 됐는데 하멜이 병영성에 억류돼 노역하면서 네덜란드식 빗살무늬 방식으로 돌담을 쌓았다고 전한다. 골목의 길이는 1.5에 이르는데 다른 곳과 달리 말을 타고 마을을 지나가는 병사 때문에 돌담이 다른 지역보다 더 높게 쌓았다고 한다.

 

해마다 여름철 청자축제 열어 다양한 체험 기회도 



               고려청자는 연꽃, 국화, 구름, 학 등을 주로 새겨 넣는다.



고려청자박물관은 고려청자 연구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면에는 고려청자박물관이 있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과 칠량면 일대에는 고려 초기부터 후기까지 고려청자를 만들었던 가마가 있으며, 우리나라 청자의 발생과 발전, 쇠퇴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이다. 이 지역에서 지표 조사된 청자요지(窯址)는 총 188개소이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요지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이러한 중요성과 학술가치가 인정되어 1963년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고려청자박물관은 강진 청자요지와 고려청자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계승하기 위해 1997년 개관했으며, 다양한 전시교육 프로그램으로 고려청자 연구의 메카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청자박물관 가까이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 한국민화뮤지엄, 강진청자판매장이 있어 연계해 관람할 수 있다. 올해 728일부터 83일까지 대구면 청자촌에서 강진청자축제가 열린다. 화목가마 불 지피기, 물레 성형 체험 등 다양한 체험거리가 마련돼 있다



               마량항에선 싱싱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다. 


천혜의 미항으로 꼽히는 마량향으로 향했다. 마량항은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서 완도군 금일, 약산, 고금 등 인접 지역을 연결하는 해상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량항 수협 위판장에서는 매일 오전 8시에 경매가 열리는데 이른 새벽부터 바다에서 거둬온 해산물이 위판장을 가득 채운다. 항구 근처엔 횟집이 많이 모여 있어 싱싱하고 다양한 활어회를 맛볼 수 있다. 낮보다 밤의 정취가 아름다운 이곳 마량미항에서는 매주 토요일 아름다운 항구와 관광객이 하나 되는 흥겨운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자연과 하나 되어 걷는 강진만 생태공원


            가우도로 이어진 출렁다리. 이름과는 달리 다리는 출렁거리지 않는다. 바다만 출렁일 뿐.


                        가우도에서 육지까지 연결한 973m 길이의 짚트랙. 바다 위를 나는 듯하다.



               강진오토캠핑장의 카라반



               카라반의 시설이 좋아 불편함이 전혀 없다. 4인 기준이며 최대 6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이튿날은 도암면에 있는 가우도로 향했다. 강진에서 요즘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여행지 중 하나이다. 강진군 도암면 망호(望湖)에 속한 강진만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다. 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에 해당하고, 섬의 생김새가 소()의 멍에에 해당한다 하여 '가우도(駕牛島)'라고 부르게 됐다. 인구는 14가구에 30명 남짓한데 출렁다리(실제로 출렁이지는 않는다)가 연결돼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가우도를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는 함께해() 은 총 길이 2.5km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최근에는 가우도에서 육지까지 연결한 973m 길이의 가우도 짚트랙이 설치돼 바다 위를 나는 듯한 스릴을 즐길 수 있다. 이용료는 성인 125,000원이고 이용자에게 강진사랑상품권 5,000원을 지급한다



                탐진강과 강진만이 만나는 강진만 생태공원. 3km에 걸쳐 이어진 데크를 걸으면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이다.


               갯벌에서 무수히 만날 수 있는 짱뚱어


이번 강진 여행의 정점은 강진만 생태공원이었다. 탐진강과 강진만이 만나는 강진만생태공원은 20만 평의 갈대군락지와 793만 평의 청정 갯벌을 자랑한다.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 등 철새 집단서식지 등 무려 1,131종의 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이다. 갈대밭을 걸으며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3km의 탐방로 데크길이 마련되어 있는데 갯벌과 갈대 바다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또한 갯벌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짱뚱어와 농게, 칠게, 방게 등 갯벌생물을 관찰하며 걸을 수 있어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다.



               청자골종가집의 한정식.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남도음식을 즐길 수 있다. 


모란 피는 시인의 집, 철쭉 피는 절집


               시인 김영랑 생가. 이 집에서 주옥같은 시들이 탄생했다.




                   세계모란공원에 있는 사계절모란원



강진읍에는 강진이 낳은 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가 있다. 1903년 이곳에서 태어나 1950년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 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 편이 광복 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사한 후 몇 차례 전매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는데 안채는 일부 변형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채는 철거되었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심겨 있다. 영랑생가 뒤편에는 세계모란공원이 있어 영랑의 문학적 감성과 보은산 도시공원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생태문학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남미륵사 입구의 코끼리상이 특이하다.


               세계 불교 미륵대종 총본산인 남미륵사



철쭉이 필 때면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세계 불교 미륵대종 총본산인 남미륵사는 1980년에 석 법흥 스님이 창건하였다. 이후 법흥스님이 40년 가까이 새로운 건물을 중창하고, 꽃과 나무로 사찰 안팎을 가꾸어 현재의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경관을 갖게 되었다. 현재 남미륵사에는 동양 최대 규모의 황동 아미타불 불상이 있으며, 일주문에서부터 경내에 이르는 길에는 500 나한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 밖에도 대웅전, 시왕전, 33관음전, 만불전, 천불전, 팔각 13층 석탑, 사각 33석탑, 18m 해수 관음보살, 5m 부부코끼리상 등 다채로운 시설물이 풍동 마을 경관과 잘 어우러져 불자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특히 절 입구에 터널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철쭉에 꽃이 필 때면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만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