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바다와 소나무와 함께하니 마냥 걸어도 좋았다(1)

숲어진새 2019. 11. 21. 20:49

바다와 소나무와 함께하니 마냥 걸어도 좋았다

영덕·울진




니들이 가자미 맛을 알아?

해파랑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걷기 길이다.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바다색인 '파랑', 함께라는 뜻의 조사 '-'을 합쳐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보며 바닷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란 뜻이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부터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총 거리 770km,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구성됐다. 10개 구간은 동해안 따라 부산, 울산,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삼척, 강릉, 양양, 고성에 이른다. 통일된다면 함경북도 청진, 나진까지 연장될 지도 모른다


                  축산항 앞바다는 영덕대게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축산항에선 대게 위판이 열린다.

 

해파랑길 21코스를 걷기 위해 영덕 축산항에 도착했다.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라 축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덕의 대표적인 어항으로 대게 위판이 열리는 전국 5개 항구 중 한 곳이다. 축산항 앞바다는 영덕대게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바다 밑바닥이 깨끗한 모래로만 이루어져 대게가 튼튼하고 알차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물가자미정식. 가자미를 재료로 한 다양한 요리가 나왔다.


아쉽게도 대게의 본고장에 와서 대게 맛을 볼 수 없었다. 6월부터 11월까지 금어기이기 때문이다. 대게 대신 선택한 것은 가자미. 축산항 앞 한 식당에서 물가자미정식을 먹었다. 가자미회, 가자미 구이, 가자미 튀김, 가자미 식해, 가자미 조림, 가자미 매운탕. 가자미를 재료로 한 갖은 요리가 나왔다. 가자미맛의 재발견. 식사를 마치고 항구 앞에서 달착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속으로 말했다. “니들이 가자미맛을 알아?”

 

해와 바다랑 함께 걷는 길, 해파랑길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해파랑길 걷기에 나선다. 해파랑길 21코스. 보통 영덕해맞이공원에서 출발해 축산항까지 가지만 이번에 거꾸로 가기로 했다. 만호정이라는 정자 옆에 난 나무데크를 따라 올라간다. 죽도산이다. 이름처럼 대나무가 많다. 이 길로 올라가면 죽도산전망대가 나온다. 죽도(竹島)는 원래 섬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매립공사를 해 육지와 이어지면서 산이 되었다. 죽도산전망대 자리에는 등대가 있었지만, 미국의 표적이 된다고 철거를 했다. 광복 후 다시 등대를 세웠으나, 2011년에 등대를 헐고 지상 7층 높이 죽도산전망대를 세웠다.


               죽도산 가는 길. 이름처럼 대나무가 많다.


                  죽도산전망대. 원래 등대로 썼던 자리에 전망대를 세웠다.

                  죽도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축산항의 모습.


                  전망대에서 블루로드다리가 보인다.


                  블루로드다리 앞에 해산물을 파는 노점이 있다.


                  갓 잡은 싱싱한 멍게. 오른쪽은 돌멍게이다.


                  죽도와 와우산을 이어주는 블루로드다리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 해파랑길21코스



                  소나무 사이로 조붓하게 난 길이 한적해 걷기 좋다.


전망대에 서면 반달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축산항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이번엔 현수교인 블루로드다리가 나온다. 다리 앞에는 해물을 파는 노점이 있다. 갓 잡은 싱싱한 멍게가 고무대야에 가득해 길손을 유혹한다. 블루로드다리는 죽도와 와우산을 이어주는 139m 길이의 보도현수교다. 이제부터 절벽과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해파랑길의 참모습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영덕블루로드 B코스 구간이기도 하다. 울퉁불퉁한 바윗길을 걷고,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넘기도 하니 점점 숲이 깊어진다. 굵직굵직한 소나무 사이로 조붓하게 난 길이 한적하니 좋다. 게다가 땅은 부엽토로 이루어져 푹신푹신하기까지 하다. 길이 끝나니 어느덧 경정해변이다. 경정해변은 원래 모래가 곱고 파도가 잔잔한 해변이지만 오늘은 바람만큼이나 파도도 거세다. 하늘도 잔뜩 흐린 채 먹구름을 품고 있어 비라도 쏟아질 태세다. 원래 해파랑길 21코스는 여기에서 경정리대게탑 ~ 오보해변 ~ 영덕해맞이공원까지 가야 하지만, 수상한 날씨와 다음 일정을 위해 생략하고 등기산으로 이동했다.

 

소나무와 바다랑 신선처럼 걷는 길

후포리 등기산에는 2018년 개장한 스카이워크가 있다. 말 그대로 하늘을 걷는 것이다. 바다 위로 뻗은 길이 135m의 해상교량으로 바닥에 투명한 통유리를 깔아 그 위를 걷도록 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리 아래로 넘실대는 푸른 바다가 그대로 보여 스릴을 느낀다. 유리 흠집과 파손을 막기 위해 다리 중간쯤에서 덧버선을 신고 가야 한다. 전망대 아래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후포 갓바위라 부른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처럼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진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2018년 완공한 등기산 스카이워크.


                  투명유리를 보호하기 위해 다리 중간쯤에서 덧버선을 신고  가야 한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찔하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후포 갓바위.


평해리에 평해 사구습지 생태공원이 생겼다. 201812, 경북 동해안 지역에 유일하게 해안 사구열이 잘 보전된 평해사구와 배후 습지를 생태체험 및 관찰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구산해수욕장, 월송정 등 빼어난 해안선과 배후습지를 활용한 생태공원으로 약 96,000규모에 생태숲, 갈대습지, 생태연못, 전망대, 생태탐방로를 만날 수 있다. 빽빽하게 들어선 해송 사이로 난 탐방로를 통과하면 갈대와 습지, 모래언덕이 나온다.


                  평해 사구습지 생태공원 탐방로.


                  소나무 사이로 길을 냈다.


                  탐방로 옆에 갈대습지가 보인다.


                  신선이 솔숲을 날아 넘는다는 뜻의 월송정.


모래사장을 지나면 붉은 정자가 나오는데 월송정(越松亭)이다. 신선이 솔숲을 날아 넘는다는 뜻(越松)이라고 한다. 고려시대 처음 만들어진 정자로 울진군지에 의하면 신라시대의 네 화랑인 영랑, 술랑, 남석, 안상이 달밤에 솔밭에서 놀았다고 하여 월송정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는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약 45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오래돼 허물어진 것을 1980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조선 성종 때는 전국의 활터에 있는 정자 중 경치가 가장 뛰어난 곳으로 월송정을 꼽았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현판 글씨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썼다. 원주 사람 최규하가 1980, 그 위급하고 엄혹했던 시절에 한가하게 현판 글씨를 쓸 시간이 있었는지 쓴웃음이 나왔다. 월송정은 예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월송정 지나 구산해수욕장 가는 길의 소나무 또한 좋다.


                  해저물 무렵 소나무를 감싸는 따스한 광선이 평화롭다. 


                  구산해수욕장 근처의 소나무숲.

                  규사 성분의 고운 모래사장을 가진 구산해수욕장.


                  구산해수욕장 오토캠핑장.


                  글램핑도 즐길 수 있다.

월송정을 지나 구산해수욕장 방향으로 다시 소나무숲이 이어진다. 해 저물 무렵 소나무숲을 감싸는 순하고 따스한 광선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구산해수욕장은 규모는 작지만 깨끗한 바닷물과 규사 성분의 고운 백사장,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좋다. 특히 오토캠핑장은 최근 TV 프로그램 캠핑클럽에서 핑클 멤버가 이곳에서 캠핑을 해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오토캠핑과 함께 글램핑도 즐길 수 있는데 송림과 넓은 백사장, 바다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바닷가 캠핑의 정취를 느끼기에 적격이다. 등기산~월송정~구산해변은 해파랑길 24코스에 들어간다.


                  왕피천 은어다리. 밤에는 조명이 들어온다.


해가 다 저물기 직전 왕피천 은어다리에 왔다. 산란철에 회귀하는 은어떼를 볼 수 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은어 조형물로 장식한 다리는 걸어서 건널 수 있다. 밤에는 조명이 들어와 색다른 느낌을 준다.

 

멧돼지 덕에 발견한 덕구온천

울진에 왔는데 덕구온천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덕구온천은 인위적으로 공을 파서 모터로 뽑아내거나 데우지 않는 천연 용출수로 신경통, 류머티즘, 근육통, 피부질환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덕구온천의 유래에 대한 전설은 이렇다. 태백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응봉산(일명 매봉산) 해발 998m 아래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고려 말기에 활과 창의 명수인 전모라는 사람이 20여 명의 사냥꾼과 함께 멧돼지를 쫓았다. 상처를 입고 도망가던 멧돼지가 어느 계곡가에서 몸을 씻더니 쏜살같이 달아나기에 이상하게 여긴 사냥꾼들이 살펴보니 그 계곡에서 자연적으로 용출되는 온천수를 발견했다.



                  천연 용출 온천인 덕구온천.


그 후 인근 주민들이 손으로 돌을 쌓아 온천탕을 만들고 통나무로 집을 지어 관리해 온 것이 노천 온천탕으로 이름나기 시작했으며, 온천지 주위는 협곡이어서 공간이 부족해 시설물 설치가 어려워 산에서 온천장까지 4km 송수관을 연결하여 물을 끌어 쓰고 있다. 덕구온천 위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실제로 하늘로 치솟는 원탕을 확인할 수 있다. 등산객들을 위해 족탕을 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해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