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섬을 이어준 보배 다리, 천사대교
신안엔 섬이 많다. 한국 섬의 3분의 1이 신안에 속해 있다. 천사(1,004)섬이라고도 부른다. 한 개 군에 속한 섬이 천 개를 넘다니 놀랍다. 그 많은 섬을 어떻게 다 세었을까. 실제로는 스물 한 개의 섬이 더 있어 1,025개다. 천이십오개섬이라고 부르기가 마땅치 않아 천사섬이라 부르기로 했다. 1,025개 섬 중 유인도가 74개, 무인도가 951개다. 무인도가 10배 이상 많다.
유인도는 14개 행정구역으로 나뉜다. 압해읍, 지도읍, 흑산면, 장산면, 암태면, 팔금면, 안좌면, 자은면, 신의면, 비금면, 도초면, 증도면, 임자면. 군청은 인구가 가장 많은 압해읍에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겠지만 팔금면 인구가 2020년 3월 기준 1,004명이었다는 것이다.
신안은 그동안 큰맘 먹고 가는 여행지였다. 서울 기준으로 본다면 거리도 멀고 교통편이 수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도처럼 다리가 연결된 섬은 종종 갔지만 다른 섬들은 쉽사리 엄두를 못 냈다.
2019년 4월 4일,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놓였다. 국내 최초로 사장교와 현수교를 동시에 배치한 다리로 총연장 10.8㎞, 해상구간만 7.2km에 달한다. 천사대교는 신안 섬에 대한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에도 다리를 놓아줬다. 천사대교를 건너면 연도교로 이어진 암태도, 안좌도, 박지도, 반월도, 자은도 등을 육로로 편히 둘러볼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천사대교는 신안 중부권의 섬들을 하나로 꿰어준 보배 다리라 할 만하다.
비구와 비구니의 애틋한 전설, 박지도와 반월도
이른 새벽 서울에서 출발해 압해읍을 지나 닿은 천사대교는 짙은 해무에 휩싸여 형체를 또렷이 보여주지 않았다. 암태도를 거쳐 우선 안좌도 두리마을로 간다. 퍼플교가 기다리고 있다. 이름 그대로 보라색 다리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박지도가 나오고 박지도에서 또 하나의 다리를 건너면 반월도가 나온다. 박지도와 반월도 두 섬 사이에는 애틋한 전설이 있다. 박지도 암자에는 젊은 비구 스님이 있었고, 반월도엔 젊은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비구는 멀리 보이는 비구니를 연모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비구는 비구니를 만나기 위해 썰물로 바닷물이 빠질 때면 갯벌로 나가 돌을 쌓기 시작했다. 마음이 통했던지 비구니도 반대쪽에서 돌을 쌓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마침내 두 스님은 만났다. 젊었던 스님들은 어느새 초로의 나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기쁨에 젖어 하염없이 두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렸다. 바닷물이 불어나는 것도 알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은 바닷물에 쓸려 사라졌다.
박지도와 반월도를 잇던 갯벌의 징검다리인 ‘중노두’에 얽힌 전설이다. 중노두는 지금은 일부 흔적만 남고 사라졌지만 실제로 꽤 긴 세월 동안 두 섬 주민이 오가던 다리 역할을 해줬다.
다리 길이는 안좌도에서 박지도까지 547m, 박지도에서 반월도까지는 915m이다. 박지도는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 해서, 반월도는 반달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지도와 반월도에는 섬을 일주하는 둘레길이 잘 나 있다. 박지도 둘레길은 4.2km(60분), 반월도 둘레길은 5.7km(90분)로 두 섬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코스별 거리와 소요시간(전체 소요시간 : 2시간 30분)
1. 박지도(두리- 박지산) : 2km
2. 반월도(두리-퍼플교-어깨산) : 왕복 2시간
박지도 트래킹 코스
- A코스(3.8km, 1시간 30분 소요) : 박지선착장 > 정상 > 박지마을 > 대야들 > 박지선착장
반월박지도 트래킹 코스
- 반월마을카페 - 마을당숲 - 섬 일주산책로 - 토촌마을 - 반월마을카페(6km)
백두산 소나무로 지은 안좌도 김환기 고택
안좌도 읍동마을에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목인 수화 김환기(1913~1974) 고택이 있다. 김 화백이 태어난 집으로 안채와 화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가민속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환기는 대지주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유년기를 안좌도에서 보내고 중학교 때 경성으로 유학 갔다가 중퇴하고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고택의 목재는 놀랍게도 백두산에서 운반해왔다. 단단한 백두산 소나무를 쓰기 위해서다. 대지주 집안에 걸맞은 재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수화는 고향을 떠날 때 소작농들에게 자신 소유의 논밭을 모두 무상분배하고, 생가 뒤편에 있던 별채 서당도 학교 사택으로 기증했다. 아쉬운 점은 수화의 생가에서 수화의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김 화백의 작품 ‘우주’는 지난해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한국 미술 사상 최고가인 132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암태면사무소 앞에는 ‘암태도 소작인 항쟁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1923년 암태도 소작농들이 암태소작인회를 결성해 친일 지주 문재철과 그의 뒷배를 봐주던 일제에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일을 기념한 탑이다. 소작농들은 7할에 이르는 부당한 소작료를 4할로 인하할 것을 요구하며 목포까지 나가 ‘아사동맹’을 결성하면서까지 지주와 일제에 맞서 승리한 역사적 사건이다. 송기숙 소설 <암태도>는 이 항쟁을 소설화했다.
여담으로 암태도 출신 정치인 천정배가 있다. 그는 목포고 수석 입학·졸업, 대학 예비고사 인문계 수석, 서울법대 수석,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 사법연수원 3등 수료로 ‘목포 3대 천재’라 불렸다. 그는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에서 법관 임용을 거부하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그의 전체 인생행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겠지만 암태도 사람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아닐까.
바라만 봐도 유쾌, 암태도 동백 파마머리 벽화
암태도 기동삼거리 길가의 파마머리 벽화는 암태도의 명소로 손꼽힌다. 일명 ‘포토존’이기도 하다. 기동삼거리에 있는 손석심 할머니와 문병일 할아버지 집 담장에 아주 재미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얼굴만 벽화가 그려져 있고 머리 부분은 살아있는 동백나무다. 동백꽃이 필 때면 할머니, 할아버지 머리에도 예쁜 꽃이 핀다. 전국에 유행처럼 번졌으나 식상하기만 한 벽화에 비하면 재치와 유머가 돋보인다. 신안 군수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처음엔 할머니 벽화만 있었으나, 나중에 할아버지가 자기 얼굴도 그려달라고 요청해 추가로 그렸다. 하지만 비슷한 동백나무를 구하기 어려워 결국 제주도까지 가서 동백을 구해 왔다. 담장에 그려진 노부부의 활짝 웃는 모습은 그저 바라만 봐도 유쾌하다. 다만 차량 통행이 많은 곳이라 벽화 앞에서 사진 찍는 이들을 위한 안전대책을 꼭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거꾸로 선 소나무, 자은도 분계해변
자은도(慈恩島)는 중국 명나라 장수 두사충이 반역자로 몰려 자은도로 피신 왔다 섬 주민들의 은혜를 입어 그 고마움을 담아 지은 섬 이름이라고 전한다.
자은도에는 아름다운 분계해변이 있다. 깨끗한 모래사장과 해안을 따라 굵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방풍림으로 조성한 숲이다. 그 중 여인송은 독특한 생김과 함께 슬픈 사연을 전하고 있다.
평소 금실 좋던 분계마을의 부부는 어느 날 부부싸움을 벌였다. 화가 난 남편은 집을 나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버렸다. 아내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걱정돼 해변에 나가 남편을 기다렸다. 하루는 소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바다를 바라보자 남편이 돌아오는 꿈을 꿨다. 아내는 그때부터 꿈에서처럼 매일 커다란 소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뒤늦게 돌아온 남편은 후회하며 아내를 소나무 아래에 묻어주었다. 그 후 소나무는 거꾸로 선 여인의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소나무는 여인의 환생이었다.
자은도에는 해넘이길이 있다. 송산마을-한운마을-둔장마을-두모마을까지 이어지는 길로 총 12km에 달한다.
새로 단장 중인 압해도 천사섬 분재공원에 잠시 들렀다 송공항으로 이동했다. 12사도 순례길로 유명한 기점·소악도를 가기 위해서다.
*참고 자료
강제윤, <신안>, 21세기북스, 2020.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 이순신을 생각하며 걸었다(2) (0) | 2020.06.25 |
---|---|
남해, 이순신을 생각하며 걸었다(1) (1) | 2020.06.25 |
기도하는 마음으로 걷는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0) | 2020.06.18 |
바다와 소나무와 함께하니 마냥 걸어도 좋았다(2) (0) | 2019.11.21 |
바다와 소나무와 함께하니 마냥 걸어도 좋았다(1) (0) | 2019.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