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부라우나루터로 향한다. 이 나루터는 여주시 단현동과 남한강 건너편의 강천면 가야리 지역을 연결하던 나루이다. 나루 주변의 바위들이 붉은색을 띠어 붉은바우 - 붉바우 - 부라우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주로 강천면 주민들이 여주장을 이용하기 위해 나루를 이용했지만, 가끔 소금배가 정박하기도 했다. 고갯마루에는 당시 세도가인 민참판댁 외가가 있었다고 한다. 부라우나루터 앞에 있는 강을 단강이라고 불렀다.
부라우나루터를 지나 우만이나루터로 가는 길은 산길이다. 길 안내 리본을 따라가면 된다. 산에서 내려와 강변을 따라 걷다 보니 저 멀리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키가 18m, 수령이 400년 된 느티나무다. 나무만 남고 나루터는 없어졌지만, 이곳이 우만리나루터이다. 우만리나루에서 떠난 배는 남한강 건너편 강천면 가야리에 도착한다. 우만리나루터는 땔감을 구하러 남한강 건너편 강천으로 가는 주민들이 주로 이용했다. 원주에서 온 소장수들이 우만리나루를 경유하여 여주장과 장호원장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느티나무 아래서 잠시 쉬다 다시 흔암리선사거주지를 향한다. 도로를 건너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산에서 내려오니 강변전원마을이 나온다. 예쁜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는 마을이다. 마을을 빠져나오니 도로변에 흔암리선사주거지 기념비가 서 있다. 도로 왼편으로 꺾어 들어가면 흔암리 선사유적 움집 모형과 흔암리유적지가 나온다.
흔암리 선사주거지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다. 이 시대는 석기시대와는 다르게 농경이 시작되었다. 낮은 구릉 지대를 중심으로 밭농사가 이루어져 사냥이나 채집에 식량을 의존하지 않고 경작과 불을 이용한 방식이 도입되어 농업 시대를 열게 된다. 흔암리 유적지는 화덕 자리와 토기 안에 탄화된 쌀을 비롯하여 조, 수수, 보리, 콩 등이 출토되었는데 여러 잡곡이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홉사리과거길을 향해 다시 산길이 시작된다. 꽤 가파르다. 아홉사리과거길은 흔암리와 도리를 연결하는 오솔길로 좁고 험해 아홉 구비를 돌아간다고 해서 아홉사리이다. 경상도 충청도에서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지만 사용하지 않아 자연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현재 39종의 식물의 서식이 확인되었다. 경상도 지역의 과객들이 문경(聞慶)을 거쳐 서울로 갔는데 이유는 ‘좋은 소식을 듣는다’는 뜻 때문이었다. 죽령은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이유로 선비들은 문경을 선호했다고 한다. 아홉사리고개에는 매년 9월 9일 아홉 번째 고개에 피는 구절초를 꺾어 달여 먹으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홉사리고개를 넘다 넘어지면 아홉 번을 굴러야만 살아서 넘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과객들도 사라지고 주막도 없어진 지 오래지만, 뱃삯을 아끼려는 사람들이 걸어서 한양으로 오가던 길로 한도 많고 사연도 많은 길이다.
아홉사리과거길은 국내 최대의 층층둥글레 군락지로 알려져 있다. 6, 7월경에는 층층둥글레와 함께 토종 야생수국도 볼 수 있으며 뽕나무에는 오디가 주렁주렁 열린다고 한다.
아홉사리과거길을 넘으니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했다. 남한강 따라 유유자적 걷는 길이려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산길이 자주 나오고 길다. 1코스 종점인 도리마을까지 가려면 다시 소무산 정상을 넘어야 하는데 산속에서 해가 지는 게 아닐까, 마지막 버스를 놓치는 게 아닐까 불안했다. 소무산을 뛰다시피 넘어 도리마을로 내려오니 오후 6시가 넘어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다행히 도리마을에서 시내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는 7시 10분. 마을회관 앞에서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기다리고 있자니 정확한 시간에 버스가 도착했다. 목적지인 여주터미널까지 전세 낸 버스처럼 승객은 유일했다.
1코스를 걷는데 6시간 정도 걸렸다. 좀 더 일찍 출발해 여유 있게 걸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 마지막 아홉사리과거길과 소무산 구간은 너무 급하게 정신없이 걸었다. 하지만 오늘 여강길 첫 발걸음을 떼었으니 내게는 아직도 13개의 여강길이 남아있다. 오늘의 아쉬움은 나머지 길에서 달래기로 한다.
*여강길 홈페이지 : https://rivertr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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