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유치면 가지산 남쪽 봉덕계곡에 자리 잡은 보림사는 신라시대인 759년 원표대덕(元表大德)이 처음 지었다. 원표대덕(元表大德)은 보조국사보다 100년 전쯤 사람으로 원래의 절 이름은 ‘가지산사’였다. 당시엔 초암(草庵)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듯하나, 그 뒤 보조국사 체징이 이곳에서 헌안왕의 뜻에 따라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로 가지산파를 열었다. 880년 체징이 입적할 때 무려 800여 명의 제자들이 여기에 머물렀을 만큼 절 규모가 컸다고 한다. 보조국사 입적 후에 헌강왕이 절 이름을 내려주어 보림사가 되었다.
보림사는 인도, 중국의 보림사와 더불어 3대 보림으로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선종이 가장 먼저 정착한 천년 고찰이다. 절집은 가지산 아래 평평한 터에 둥지를 틀었는데, 주변의 다섯 봉우리가 활짝 핀 연꽃잎처럼 사찰을 품었다.
옛 모습의 보림사는 웅장하고 수려한 모습이었으나 조선시대 숭유억불책(崇儒抑佛策)으로 쇠락하다가, 한국전쟁 때 불이 나 20여 동의 건물이 불타고 일주문과 천왕문만 남았다. 대적광전도 불탔으나 다행히 그 안에 모셨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무사했다. 아마도 철불이어서 화재를 견딘 게 아닌가 싶다.
건물은 많이 불탔지만, 다행히 화마를 피해 보림사의 명성을 이은 보물이 경내에 많다. 대적광전 앞 삼층석탑과 석등(국보 44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117호), 보조선사탑(보물 157호) 등 보물 10점, 지방문화재 13점이 있다.
보림사 마당에는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약수터가 있는데 한국의 명수(名水)로 손꼽을 만큼 좋은 물이다. 이 약수로 차를 달여야 차 맛이 제대로 난다고 하기도 한다. 샘이 솟아오르는 곳에 작은 물고기와 다슬기가 산다.
보림사 뒤편으로는 500여 그루의 아름드리 비자나무숲이 있다. 주차장 오른편에서 시작하는 청태전 티로드는 비자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와 푸른 차나무가 어우러져 삼림욕 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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