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산자연휴양림에 숙소를 잡았다. 내일 아침 일찍 천관산에 오를 계획이기 때문이다. 천관산에 오르는 등산 코스는 여러 개 있지만,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동백숲 군락지가 있는 천관산자연휴양림에서 묵고 싶었다. 휴양림에서 천관산 정상인 연대봉까지는 왕복 5.6km, 3시간 정도 걸린다.
6시쯤 일어나 산에 오를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간밤에 절제하지 못하고 과음하는 바람에 몹시 힘들었지만 죽기 살기로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산 들머리를 조금 지나니 서서히 새벽 여명이 시작되었다. 멀리 하늘의 관(冠)을 쓴 듯한 바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천관산(天冠山)이다. 신라시대 김유신과 사랑을 나눈 천관녀가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사람 얼굴을 닮은 바위 등 기암괴석이 줄줄이 나온다. 대장봉 환희대에 도착했다. 책처럼 생긴 바위가 둘러선 가운데 책상처럼 반듯하게 깎아놓은 듯한 평평한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큰 기쁨과 성취감을 맛보라는 의미에서 환희대라고 이름 지은 모양이다. 약간 생뚱맞다. 나라면 책상바위라고 이름 붙였을 것 같다.
환희대를 지나니 억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천관산 억새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환희대에서 연대봉까지 펼쳐진 1,320천㎡(40만 평) 억새평원과 억새들 사이로 내려다보는 한라산과 다도해 풍광이 장관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억새 절정기에 맞추어 천관산 억새제가 열린다.
연대봉에 오르니 날씨가 썩 맑지 않아 또렷이 보이진 않았지만, 지리산 천왕봉, 해남 대둔산, 영암 월출산, 담양 추월산, 거금도, 금당도, 거문도, 청산도가 보였다. 가장 감동을 준 것은 한라산이 보인다는 것.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보인다는 한라산을 한 대도 덕을 쌓지 않고도 보다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겠나.
천관산 아래와 달리 연대봉은 정상답게 바람 불고 추워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서둘러 하산을 하는데 이번에는 오던 길과 달리 환희대 옆으로 빠지는 새로운 등산로를 택했다. 이 길은 왔던 길과 달리 꽤 험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 같았다. 다만, 산행이 거의 끝날 무렵, 수정제 근처의 숲은 아주 걷기 좋고 아름다워 삼림욕 하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숙취로 힘들어 갈까 말까 망설이다 올랐는데 오르길 정말 잘했다. 이런 걸 해장산행이라고 하나. 산에서 내려오니 이미 숙취가 말끔하게 가셨다. 천관산은 크게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산이다. 내년 억새가 절정일 때 꼭 다시 한번 올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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