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길에 발견한 '푸른 섬'
어제에 이어 오늘은 3코스와 2코스를 돌아보기로 했다. 어제처럼 어청도항에서 출발해 어청도초등학교와 치동묘를 지나 팔각정 쉼터까지 올랐다가 공치산 쪽으로 내려와 이어지는 2코스 해안산책길을 걷기로 했다.
치동묘는 중국 제나라 사람 전횡을 모시는 사당으로, 치동은 제나라 도읍 임치(臨淄) 동쪽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202년 한나라 유방이 초나라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통일하자 전횡은 병사 500여 명을 거느리고 돛단배에 올라타 기약 없는 망명길에 올랐다. 중국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안개가 살짝 낀 바다 위에 돌연 푸른 섬 하나가 나타나자, 전횡과 군사들은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섬에 상륙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전횡은 ‘푸른 섬’이라는 뜻의 ‘어청도(於靑島)’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전횡은 한반도 남부 만경강 유역에 독자적인 철기문화를 전해준 자로도 알려져 있고, 어청도 주민들에게는 수호신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어청도는 원래 해적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전횡이 해적을 물리치고 더는 침략할 수 없도록 주민들의 안전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해마다 음력 섣달그믐날에 주민들은 전횡을 기리고 마을의 안위와 풍어를 위한 제사를 모신다. 녹도와 외연도에도 전횡 사당이 있으며, 담양 전씨 문중에서는 전횡을 시조로 삼고 있다.
어청도 초등학교 운동장 입구에는 마치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연리지 향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100년이나 된 나무로 마치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 같다 하여 ‘사랑나무’라고 부른다. 1925년 개교한 이 학교는 올해 2월 28일 폐교가 되었다. 내년이면 100주년인데 1년이 모자라 99년 만에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떠난 빈 운동장이 쓸쓸해 보였다.
어제 올랐던 팔각정 쉼터가 3코스 안산넘길의 시작점이다. 오늘은 공치산 방향으로 내려간다. 날씨가 너무 무더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오늘은 안개까지 끼어 전망이 좋지 않다. 키까지 웃자란 숲에 땅엔 덩굴이 무성해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공치산 해막넘쉼터를 지나 한반도 지형 관측지라는 안내판까지 오니 안개 속에 희부옇게 마을도 보이고 저 멀리 해안산책길 데크도 보인다. 한반도 지형은 좀 더 높은 곳에서 봐야 온전히 보일 것 같다. 애초 계획은 목넘쉼터를 지나 해안산책길로 길을 잇는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2코스 해안산책길로 이어지는 데크가 훼손돼 통제를 하는 바람에 목넘쉼터 근처 사잇길로 빠져나와야 했다.
밥시간이 기다려지는 ‘맛의 섬’
어청도는 낚시 천국으로도 유명하다. 섬 전체가 바다낚시 포인트라고 할 만큼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데 특히 배가 도화지처럼 새하얀 자연산 광어가 별미다. 먹어보니 쫄깃쫄깃 하고 찰진 광어맛이 일품이다. 평소에도 자주 먹는 광어회이지만 심해에서 자라서인지 어청도 광어회는 각별하게 맛있다. 어청도에서 놀란 점 중 하나는 음식들이 다 맛있다는 것. 대게 민박집이 식당을 겸하는데 어딜 가도 푸짐하고 맛있었다. 어청도 식당의 식탁에 오르는 회나 해산물은 모두 어청도에서 잡거나 수확한 100% 자연산이다.
1박 2일 일정이 끝나 다시 군산으로 나가야 했으나 뭔가 아쉽다. 해안산책길을 제대로 다 걷지 못했다는 것, 날씨가 너무 덥고 안개가 끼어 ‘푸른 섬’의 참모습을 마주하지 못했다는 것. 한 번에 다 보여주잘 않아서 어청도를 비밀의 섬이라 하나? 날씨 쾌청한 가을에 넉넉하게 2박 3일 일정으로 다시 와 어청도의 비밀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싶다.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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