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고래 대학살흑산도 하면 홍어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고래잡이로 유명했다. 한반도에서 포획된 고래의 25% 이상이 흑산도 근해에서 잡힐 만큼 흑산도는 고래잡이의 중심지였다. 이 시기에 약 1만 마리의 고래가 포획된 것으로 추산한다. 일제는 흑산도 예리에 ‘대흑산도 포경근거지’를 설치해 조선총독부 직원을 파견하고, 포경 허가권을 쥐고 고래잡이를 독점했다. 일본인들도 건너와 예리에 일본인 어촌을 형성해 한때 100여 명이 거주하기도 했다. 이들은 마을에 일본 신사를 지어 신사 출입구를 상징하는 ‘도리’를 고래뼈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흑산도에서 잡혀 해체된 고래고기는 시모노세키로, 고래 부산물로 만든 비료는 효고현으로 보내졌다. 당시 포획된 고래의 종류로는 대왕고래(흰긴수염고래),..